올해 초, 폐업 위기에 처한 30년 전통의 성대 앞 책방 풀무질을 네 명의 청년 대표 고한준, 장경수, 전범선, 홍성환이 인수해 새롭게 열었다. 이들은 이론과 실천의 거점이었던 인문 사회과학 서점의 ‘시대정신’을 ‘지금 여기’의 젊은 세대를 끌어당기는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에 이어받았다. 포용과 관용이라는 명맥을 유지한 채 훨씬 더 다양한 가치를 담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모토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모여, 새로운 생각을 얻어가는, 서로의 사상에 불을 지피는 책방. 넘실대는 불꽃처럼 고요함 속에 잠재된 역동이 느껴지는 책방. 풀무질의 새 출발을 기대한다.

인터뷰: 전범선, 고한준, 홍성환 (풀무질 공동대표)
Q. 각자 풀무질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전범선: 풀무질은 사상에 불을 지피는 책방이다. 고한준: 풀무질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홍성환: 풀무질은 서로 모여 소통하고 새로운 생각을 얻어갈 수 있는 서점이다. Q. 유서 깊은 대학가 앞 사회과학 서점이었다. 리브랜딩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전범선: 사상에 대한 급진성이다. 이론과 실천이 연계되는 하나의 거점, 담론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간이란 개념에 집중하는 것이 브랜딩의 핵심이었다. 처음 풀무질이 생겼을 당시 사상의 방향성은 굉장히 분명했다. 전두환 독재 체재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이 땅의 민주 평화를 이룩할 것이냐. 물론 지금도 유효한 명제이긴 하나, 책방을 살리기 위해선 요즘 젊은이가 와야 하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동기는 훨씬 다양해졌다. 어쨌든 모이는 행동은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그런 것들이 있는 한 책방 풀무질의 역할도 분명하다. 다만, 시대 변화에 따라서 최대한 열린 방향으로 다양한 담론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 합의점이다. Q. 책방 풍경의 변화가 특히 극적이다. 공간을 재구성하며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홍성환: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예전 공간보다 오랫동안 쾌적하게 머물 수 있도록 바꿨다. 아직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뉴욕에 가서 책방을 많이 둘러봤는데, 모든 운영자가 자기 책방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넘쳤다. 각 책방이 지역에서 사회문화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운영 방식도 여러 가지다. 영감을 많이 받았다. Q. 기존 단골 비율이 높을 것 같다. 외려 옛 풀무질을 그리워하는 손님도 있나? 홍성환: 이전 단골 손님 모두 변화에 동감하고 좋게 봐줬다. 다행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책방이란 공간에 대한 의식에 문화적인 제약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카페를 같이하는 순간 ‘정체성을 잃는다’고 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모여 소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상이 나오는 공간이 되려면 오고 싶은 공간이 돼야 하지 않나? 독자를 유인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Q. 책은 어떤 식으로 분류 배치돼 있나? 전범선: 입구 왼편 서가는 문학, 오른편은 현대 지성인이라면 알아야 할 고전과 역사. 정면에서부터 쭉 현대철학과 사상 담론서다. 대략적으로 좌에서 우로 배치돼 있긴 하다.(웃음) 가장 안쪽에는 한국정치 관련 도서를 엄선하려고 한다. 중앙에는 운영진의 개인별 추천 코너다. Q. 입구 벽화가 강렬하고, 책방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것 같다. 소개해달라. 고한준: 동서양을 아울러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풀무질을 수호해주는 사상가 55명을 엄선해 담았다. 벽화를 그린 작가 박연이 ‘풀무질 오십오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1차적으로 선택된 사상가가 100명이었는데, 우리끼리 치열한 논의를 거쳐 최종 선정했다. Q. 책방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고한준: 《탈코르셋 선언》 저자 강연회, 《해러웨이 선언문》 역자 강연회, 유이우 시인 낭독회 등을 열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읽기 모임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형화되지 않은, 신선한 문화 콘텐츠를 다양하게 시도해보고자 기획 중이다. 책을 이용한 커뮤니티 빌딩 방식은 무궁무진한 것 같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뭔가를 발견하면, 그게 또래 사람들에게도 공명하지 않을까 싶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전범선: ‘3C’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큐레이션(Curation)을 통해 우리 취향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 두 번째는 그에 기반해 자체 콘텐츠(Contents)를 만드는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Community)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요즘 대한민국 대학의 인문학 기능이 철폐됐다고 하는데, 그 대안이 될 만한 책방 이상의 기관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